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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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이 새끼들. 밥그릇에 앞 발 포개어 놓고 먹던 녀석들이 이젠 형제들끼리 밥그릇 쟁탈전을 벌일 만큼 컸다. 그리고 이 놈들 말고도 3~4마리를 더해 평균 7~8마리가 더 찾아 온다. 그리고 늘 주는 양은 양치컵으로 1컵. 더 주고 싶어도 점점 비싸져 가는 고양이사료(원래는 대용량으로 20키로를 사서 먹였으나 이젠 값이 너무 올라 15키로로 줄였다 ㅠ)로 인한 것도 있고, 너무 많이 주면 집 쥐를 안 잡기 때문에 쥐를 방지하기 위함도 있다. 이녀석들도 이제 좀 더 자라면 독립해서 나가겠지. 정말 길냥이들은 한 순간에 사라지다 시피 한다. 마치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버리는 철새들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또 다른 곳으로 잘 독립해서 나가기를 바래본다. 토종 머루. 머루포도도 아니고 그야말로 진짜 머..
역시 수업을 위해 다시 오랜만에 읽어 본 시집. 시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는 시를 쓰는 류근이기에 그야말로 믿고 읽는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문장도 어렵진 않고 문학적인 감응와 감동의 향연. 언제 다시 읽어 봐도 맛있는 문장은 맛있는 문장인거다. 긴말 필요 없는 정말 맛있는 시집이었다. ★ ★ ★ ★ ★
밤하늘엔 등대가 흔들렸습니다 나란히 걷는 골목에 스쳤던 생채기가 우리를 흘낏 보았구요 나는 우산을 찾아서 그대는 집을 찾아서 서로를 보듬고 왔지요 더러 그런 날이 기다리고 있지요 하늘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땅을 내려다보며 옥상에서 중얼거렸죠 우린 어렸으니까요 세상은 바다였으니까요 속으로 파고드는 밀물을 모른체 했지요 마냥 울음이라고만 믿었지요 그래서 입을 다물고만 있었겠지요 마을의 개들이 간혹 서로가 감응을 해요 하나가 울면 다른 하나가 땅이 꺼져라 짖어요 우리도 함께 울었고 함께 짖었죠 우리는 결속했고 다짐처럼 각자 헤엄을 쳤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우짖는 방향으로만 기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함향, 2022
보험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를 이십 년 만에 만나 술 먹고 노래방 가서 불러 젖히고 돌아온 집 들목, 북진하는 단풍이 보인다 어인 물감이냐 차창 위 층층 너의 바지 아랫단이 얌전히 눌린 꽃잎이, 혹시 간밤 빗물에 총총 뛰놀다 떨어진 참으로 참했던 침묵이냐 빗물은 하늘을 내려빗기는 반가운 손님이란 걸 아니 잊었더냐 함향, 2022
읽고 또 읽는 맛이 있는 시집이다. 처음엔 수업을 위해 급하게 읽었더니 별로 감응이 없었는데 나중에 수업이 끝나고 시간 날 때 다시 읽어보니 하나하나가 다 맛있는 문장이었다. 별로라고 그냥 대충 읽고 말았다면 너무나 아까웠을 것 같았다. 시들도 너무 길지도 않고 그야말로 적당한 길이였고, 왼쪽엔 제목이 오른쪽엔 시 본문이 위치한 편집마저도 맘에 쏙 들었다. ★ ★ ★ ★☆
그건 정말이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야 늦은 여름 아침에 누워 새벽을 홀딱 적신 뒤에야 스르르 잠들고자 할 때 너의 소원대로 스르르 잠들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저 먼 곳에서 너는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멀리서 너의 이마를 아주 오래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너는 모르는 게 좋겠지 창작과 비평, 2022
절 마당에 떨어진 꽃잎이 바람 가는 쪽으로 몰려간다 천도제 끝난 봄날이다 처마밑 틈새로 새가 들어가자 울음이 쏟아진다 생사의 길에 구르는 명랑 슬플 것도 기쁠 일도 아닌 듯 검은 소복 여인의 치맛자락에 민들레 꽃씨가 날린다 죽음은 멀리 가는 것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바람처럼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내안의 울음을 다독일 때 지는 꽃잎에도 눈물이 난다 천도를 건너는 그대 눈물자국만 흥건하다 가끔 사는 게 뭐냐고 물었지만 구름은 먼 산 넘어가고 하루도 저물어 서쪽엔 노을이 든다 다음에 올게요 산문을 나서는데 다음이라는 말이 기약 없이 화두처럼 따라온다 절 마당에 떨어진 꽃잎이 바람을 따라간다 달아실, 2023
고요히 앓던 어린 마음이 순하게 떠나려나보다. 분명 문제가 있었어. 혼자 돌아다니는 게 수상쩍었어. 그 눈빛이 단감, 단감 하루에 딱 한 시간 누렇게 바랜 한자 많은 옛날 책 갈피 새 누웠다 간다. 다 읽지도 못하고 이상한 마음이었어. 밤에 자꾸 나가게 하는 달리게 하는 어둠 속에서 물러가는 그건,뿌리. 아무도 안 봐. 단감, 단감 갈래갈래 갈라지는 하나의 목소리. 툭하면 굵은 가지도 부러트려주었던 억센 나무야, 착하다. 고맙다. 이제 그만 놓아줘. 단감, 단감 부서진 조각을 묻어도 부드럽고 둥근 불꽃으로 다시 자라나. 내게 올래? 나를 지켜줄래? 전부 다 잊어버릴래? 너를 쪼아먹을까? 너를 말려 먹을까? 단감, 단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와. 오늘 나는 글자를 다 잊었어. 까악까악 울고 있어 내 뱃속엔..
월요일에 겨울비가 내렸다 딱 오늘만 내리기로 했다 남색 우산에 검정 꽃무늬 원피스 노란 우산에 네이비 도톰 원피스 땡땡이 민트 우산에 와인 니트 원피스 빗줄기를 세어보기로 했다 열밖에 외울 줄 모르는 아이처럼 현관을 나가면 사람을 잊을 수 있도록 거리에 사람들이 한 손을 흔든다 나머지 한 손에는 벗은 원피스가 월요일을 생각하고 생일로 조합한 비밀번호를 떠올리고 나는 월요일을 좋아하고, 비를 좋아한다, 그것도 월요일에 내리는 겨울비 열까지 세어보고 눈을 떠보니 현관문 뚫린 열쇠 구멍으로 꽉 들어찬 물음표가 보였다 달아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