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 사랑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지금 창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나요
모텔과 모텔 사이로 하루 종일 서 있는 가로등이 보이는 이곳에선
비가 내리는 지 가는 지 오는 지 뛰고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낙엽들은 지쳐 쓰러지며 울고들 있다는 데

지금 창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나요
어제 밤에 빨아 넣었던 줄무늬 사각팬티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가슴 아프게 말라 죽어가는 가느다란 저 식물의 줄기들은
온종일 비를 기다리던데
그 좁은 땅은 그새 메말라 부슬부슬 모래가 씹힌다고 하던데
줄기들은 힘이 하나도 없이 잊혀 진 책장처럼
그 어느 곳에서 조차 잉크 냄샌 나질 않는다던데

책들이 그렇게 많았다면서요
너와 나의 이름이 적혀 있던 전화번호부며
그리고 당신의 졸업앨범이며
당신이 매년 들고 다녔던 그 새빨간 다이어리
음악 같은 눈이 내리는 격렬비열도의 풍경을 담았던 시집이며
그 많고 많았던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건가요

봄도 여름도 겨울도 낭만으로 가득 차
온통 사랑으로 물들었던 가을이 되기만을 기다리던데

지금 창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나요
지금 그대 가슴에 비가 내리고 있나요
가끔은 정말 보고싶어요
그대 가슴에 깊숙하게 박히고 있을
그 찬연했던 빗소리를
가끔은 정말



*류근의 시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에서

'인간과 문학'
2014년 신인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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