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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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
쿨러안엔 한 마리 뱀이 살고있어 내벌름 허벌름 도사리는 서늘함 내뱉으며 먹이를 끌어댕기는 뱀이 치마가 짧은 어랜 새앙쥐 한 마리가 냉장고에 들어왔지 침을 꾸울떡 삼키고 아가리를 쫘아악 벌렸지 그런데 잽싸더군 대추알이랑 알로에를 빼내고는 눈치 챈 듯 냅다 달리더라고 그 꼴을 보니 뱀은 무얼 먹고 사나싶더군 쿨러 천장에 박힌 이슬이라도 마시는 걸까 그래서 먹이도 못 잡아먹는 정확한 코를 가진 것인지도 모르겠어 그럼 저 움직이는 것이 먹이를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을 마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 여름 그 쿨러의 뱀은 쫄쫄 굶게 생겼군 안된 것 같으니 내가 그 놈의 먹이라도 되어 줄까 그 놈의 먹이라도 되어 나도 비틀비틀 비틀즈나 되어볼까
모기를 기록한다 삶을 기록하는 것이다 슬퍼했으리라 가까이 봐야만 아픈 상처를 휴지로 닦아주고 나니 다리를 가지런히 포개어 마침표를 찍는다 흐려지는 흔적을 안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으리라 필름이 스친 자국을 남기며 모기는 스스로 기록되었다 봄과 여름 사이 날씨 어둠 그해 첫 철쭉이 노트위에 피었다 아무런 체취도 남기지 않은 체
순례라도 하듯 올라 온 산의 허리 바람을 맞이하였네 한 여름 할머니의 이마처럼 환하디 희게 핀 달맞이꽃 무리 노드리듯 불어 오던 나무 그늘 아래서 무를 무우라 말하던 시인의 시집을 보았네 둥그마한 흰 소의 꼬리에서 점 하나 피었네 흰 메아리가 돌아오던 땅속에서도 점 하나 피었네 시집을 들고 있던 손목의 간지럼, 점 하나 피었네 바람불어 간지러운 목 뒷덜미에서도 점 하나 피었네 생의 화려한 순간 추억하려 낙하한 곳이 마지막 계단처럼 아득한 그들에게 뿌리를 만들어주고 잎을 틔워주었네 그들 심장박동소리 깊숙히 울리었네 바람 불었네 그들은 무리지어 핀 달맞이 꽃 언저리께로 날아가 어렴풋이 화석이 되었네 바람 불어와 길이 저물었네 산 곳곳으로 달맞이꽃 피었네
kuzu vine [인간] 대전지역 의류업체 생산관리과의 낙하산 덩굴덩굴성 다년생 인간으로 몸의 길이는 177cm이며 입은 어긋나고 턱은 두 쪽 겹턱이다 지난 8월 8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있는 빽 없는 빽 총동원하여 입사한 상태다 지금 막 졸업한 사회초년생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벨트 위 뱃살은 양 옆으로 7~8cm 두께로 길쭉하고 넓적한 모양으로 협과이다. 굵은 털 한 올 없는 허술한 머리체계는 어쩔 수 없고 12월이나 1월엔 없는 올마저 처량하게 서리를 맞는다 주로 보문산 기슭 양지빌라에서 자생하는데 서구 중구 유성구 대덕구 동구 등지에도 두루 분포하며 추위에도 강하지만 염분이 많은 생산공장에서도 잘 자란다 토요일 밤엔 대전 도심지나 서구 둔산동 등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히 드문..
그녀는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밤 어때요 나는 화려해 보이던데 하지만 늘 우울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조용한 거리에 초점 잃고 흔들리는 가로등이 가끔은 애처로워 보일 때 가로등 켜진 길을 따라 가보면 언제든 나타나는 편의점들 긴 여름 밤 아니 따지고 보면 짧은 여름 밤 한 쪽 어깨를 달래기 위해 마셨던 캔 맥주 한 잔이 그리워지는 시원-하게 마셔주고 한 대 꼬나물며 지나가는 사람들 정수리 보며 툭 내뱉는 말 어휴, 좋-을 때다 겨울로 가는 계절과 시간은 늘 좋을 때지 하지만 없는 건 이미 지나간 버스인거야 유행 지난 개그코드인거지 그래서 어쩔거야 어쩌긴 어째 어째하다 보면 째버리는 거지 째째해 보이겠지만 말야 hoot
누가 뒷목이나 탁! 쳐줬으면 좋겠다 TV 드라마 장면 속 낮술 취한 그니들처럼 그렇게 슬쩍 바닥으로 몸을 내던지는 뙤약볕처럼 엎어지고 싶었다 한 때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에서 누군가 갈피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신입을 구한다며 경력을 요구하는 현실을 비판한 적도 있다지만 이제는 흔한 진실 속 루머들처럼 머릿속에서 뒤 섞여 이제는 보지도 않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처럼 기억마저 각색되고 산산이 부서져 잊히는 요즘. 아이들은 언제나 좋아요 웃음과 함께 내뱉는 상스러운 욕들도 친근하죠 종종 싫은 아이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내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아이들인 걸요 품어줘야죠 그냥 학생이 아닌 우.리. 아이들인거잖아요 수업시간 보다 일과 중 쉬는 시간이 길어지기만을 원하는 우리의 아이들인 걸요 오늘 점심시간..
손쌤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름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웃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인사 살루톤(Saluton)!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존재 세상에서 가장 빼곡한 책상 세상에서 가장 변함없는 패션 당신은 간디의 살아있는 역사 그리고 간디의 보배 당신은 간디의 조상님 그런 당신은 진정한 간디인 당신이 있는 간디학교는 늘 즐겁습니다 당신의 간디살이 20주년을 축하합니다! 김명철 대표님 월악 영봉의 기개와 하설산의 넉넉함을 품고 스무살의 간디학교와 함께 걸어 온 길 여전히 넉넉한 당신의 품안에서 봄꽃 여름풀잎 가을나무 겨울 눈송이 사계절 내내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당신은 간디인! 간디의 부모로 언제까지나 영원히! 당신의 간디살이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양희창 쌤꺼 당신은 어린왕자 나는 당신의 장미..
커피는 주인 할머니가 빵봉지처럼 널부러진 동네 가겟방으로 가 구매합니다 식후 30분 일일삼회로 복용하셔야 합니다 각각 한 봉씩 화분에 넣고 따뜻한 햇살로 잘 개어줍니다 화분을 왼손에 들고 창가로 가 다소곳하게 창틀에 기대어 서 줍니다 오른손은 반드시 왼손 팔꿈치를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다시 천천히 들어주시고 각도는 70도 눈은 창문 밖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소량으로 천천히 복용하셔야합니다 네 모금 째에는 밖을 한 번 바라 봐 줍니다 눈부신 듯 약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 잠시 쉬었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그 다음 움직여 부엌으로 갑니다 찻잔을 닦아 물기를 제거 하신 후 찬장에 살며시 놓아줍니다 마지막으로 양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주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저들의 맨 처음도 같았을 까 스치는 걸음처럼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입김이 서려있었음을 감지하는 일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고 회상하는 것 때로는 떨어지는 낙엽도 때때로 꽃처럼 붉은 법 때로는 시시각각 찾아오는 불안감에 몸서리치는 일 해질 녘 오랜만에 바라 본 하늘 온 벽으로 번지는 노을이 안쓰럽다 시간은 새벽을 향해 내달리는 중 그는 또 다시 일어날 지 기억의 저 편으로 걸어들어갈 지 고민 하는 중 먼저 떨어진 새벽의 땀 방울은 벌써부터 땅 위에 흔적을 남겼다지만 늘 처음의 것들은 낯설지만 금세 익숙해지기 마련 앞에서 걸었을 걸음의 첫 걸음은 어느 방향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일 차라리 누가 이 쪽 방향이 정문이라고 말해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막막하기만 한 생각 네 엄마 아뇨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약..
씹히고 짓이기고 나서야 배춧잎 위에 피어난 꽃 이제야 잊혀 질 준비를 끝마쳤다 꼭꼭 씹어 기억해 달라 울부짖지도 않았다 너만을 위한 풍미만을 더했을 뿐 다만 그 뿐 그래서 너를 더 그리워하기로 했다 한 팩에 깔끔하게 벗겨져 채워졌던 너의 육체 그것은 자신감 매끄럽도록 알싸한 너라는 품 움켜잡고 쓰다듬듯 훑어 내려가는 손결 도마 위에 누워 나의 손을 힘껏 당김 잠기는 눈 밤 그리고 빛과 결 커튼 끈적 진액이 손에 흥건 황홀 지고 있던 노을만큼 황홀한 순간 너를 보낼 수 없어 가끔은 눈물도 흘렸다 너의 생은 아름다워서 마지막 순간은 늘 아름다운 것이어서 마지막에 비로소 너는 꽃이 되었다 너는 늘 초록 밭을 꿈꾸었다 스며들 듯 잠든 하얀 눈 꽃 옹기종기 둘러앉은 저녁 식사 자리 식탁 위 가운데 뚝배기 안에 피..
파도를 쌓아 만든 입구 서성이는 빗소리에 가만히 서 기다리던 발자국 바람은 고요하게 일렁이다 아무는 고요 당신에게 흐르던 겨울의 흔적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던 섬에서 맞이하는 파도를 닮은 하얀 꽃비 내리던 바다 어디에도 없던 당신이라는 문장으로 읽히는 책을 발견하곤 가슴이 멈춘 듯 흥분 꽃피운 입술로 만개하던 동백 잊을 수 없어 걷던 길을 계속 걷기만 했다 지면서도 이름다웠던 수많은 사랑의 흔적으로 스며들던 기억들마저 그렇다고 당신만큼 그립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을까 지워지는 걸음보다 읽혀지는 문장이 더 아름답도록 바람은 거세어지고 파도는 짙어져만 갔다 알고는 있을까 바람이 깊고도 아늑하다는 것을 소리를 읽으면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는 것을 내딛는 걸음마다 점점 기억이 저물어 간다는 것을..
속이 울렁일 만큼 지난밤은 우울했다 달그림자조차 홀릴 만큼 정적과 폐허로 쓰인 밤 무턱대고 시작된 어둠은 아니었으나 그늘진 담벼락에도 물비린내 진동하던 아파트 계단에도 어둠은 이끼처럼 피어났다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의 의문으로 당신의 자리는 바뀔 거예요 선이 분명하지 않은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는 있었으나 안개로 가득 찬 강의 언저리에서 바라 본 밤 착실한 자리가 있기나 할까 어딘가 있었을까 꿈은 멋대로 흐르는 법 현실도 맛대로 읽히는 법 밤이 되면 어둠에 사로잡혀 달의 무늬처럼 읽혀지는 밤 나는 지금 어디로 흐르는가 밤 은 깊 어 눈 부 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