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일 - 뿐,

바람이 꽃잎을 흔들고 
흔들린 꽃잎은 상처를 흔들고 
마음을 흔든다 

흔들린 마음 하나 
더할 수 없이 위중해진 
단단한 슬픔이 되어 
목구멍을 막는다 

그래 
그냥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고 못 박아 두자 
꽃그늘 하나 드리우지 못하는 가여운 나무의, 
그 깡마른 그림자의, 
말라 가는 비애쯤이라 해 두자 

운명적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지 
점등 별의 망루에 올라 잠시 스위치를 켰을 뿐 

그래, 그래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서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 



'애초의 당신' 
민음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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