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 저녁의 문장

당신이 없는 두 번째 저녁이 지나가고 있다
 
구겨지고 휘어지고 용솟음치는 날짜들
저녁의 문장에는 언제나 당신의 입술이 묻어 있다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전에, 사무친다고 말하기도 전에
전선(戰線)처럼 들이닥치는 거대한 안개의 대열들
 
도대체 우리 사이에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지
도대체 우리 사이에 천년 세월이 지나가기나 했는지
 
문장은 구부정해지거나 부스러지거나 편파적으로, 별빛에 파묻힌다
 
저기
당신이 없는 열 번째, 열두 번째 저녁이 지나가고 있다
 
저녁의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미루나무 그리고, 슬픈 입술들



'현대시학'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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