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찢었다가

아픔 없이 맺히는 것 없듯
슬픔 없이 헤어지는 봄도 없어

가지의 피부를 뚫고 나오느라
꽃잎은
얼마나 아팠을까

파도에 짓이기면서도
바다는 얼마나
울었을까

누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담 밑에 주저앉아 일찍 지워지듯 가버린 할머니 생각에 골목의 어둠속으로 울음 토해내던 아버지 생각에
어둠은
얼마나 깊고도 안쓰러웠을까

베갯잇 바래는 줄도 모르고
흘린 눈물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밟히고 밟혀 바다의 품으로 스며들던 해변가 모래의 상처들
순서 없이 떨어지던 봄 꽃이 만들어낸 길 위의 생채기들
파도 위로 차츰 스미며 바삐 오가던 머릿 속 많은 입술들

그럼에도


벌써부터 그리워질





계간 '인간과 문학'
2023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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