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밀린 월급을 품고 귀가하는 가장처럼
가난한 옆구리에 낀 군고구마 봉지처럼
조금은 가볍고 따스해진 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린 사람일수록 이 지상에서
그를 알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기를 기도하며
내가 잠든 새 그가 다녀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등불 아래 착한 편지 한 장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내 기도에 날개를 씻고
큰 강과 저문 숲 건너 고요히 내 어깨에 내리는 것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은 내 생애에
진실로 나를 찾아온 사랑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새처럼 반짝이며 물고기처럼 명랑한 음성으로
오로지 내 오랜 슬픔을 위해서만 속삭여주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깨끗한 울음 한 잎으로 피어나
그의 무릎에 고단했던 그리움과 상처들을 내려놓고
임종처럼 가벼워진 안식과 몸을 바꾸는 것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처럼
젖은 눈썹 하나로 가릴 수 없는 작별처럼

내게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새벽별
숫눈길 위에 새겨진 종소리처럼



<상처적 체질>
문학과 지성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