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도립병원
철조망 아래 우리 집은 그 여름이 다 가도록 비에 잠기고
생각에 잠긴 지붕마저 선착장 유람선처럼 흘러가고
빚쟁이도 고지서도 쳐들어오지 않는 날들은 평화로웠네
비가 오면 조금씩 흘러가 마침내 주소마저 지워져버리는
우리 집 서쪽에는 항상 시청 철거반 합숙소가 있고 일요일
오후에 건빵 가져다주던 박 대위 아저씨 하숙이 있고
우리 큰누나 재봉틀에 매달려 일하던 모자 공장 그 건너
방죽에는 패랭이꽃 달맞이꽃 온갖 주인 없는 꽃들이 피어
갈 데 없는 마음들과 놀아주었네
백동전 서너 개만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소년중앙
별책 부록을 끼고 차창에 기대 먼 곳을 바라보는
도회의 유복한 소년처럼 한나절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했네 조치원역에서 내려 짜장면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하루라도 포만과 감미로운 피로에 젖어 잠들 수 있다면
이 세월 빨리 건너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날마다 비는 내리고 기차보다 빨리 흘러가버리는
우리 집 지붕을 붙들고 서서 나는 쓰르라미처럼 울었네
온갖 고통이 문패를 달고 세월을 밀고 갔네 그 너머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아주 흘러가 지상에서 사라진
우리 집 지붕 위에 내 눈물 아직도 비를 맞네 
 


<상처적 체질>
문학과 지성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