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원산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혼자서 잠이 들었다

한 사람은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고
한 사람은 약속을 따르는 것처럼

원산으로 가는 열차는 가득 차고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디로든 이동하는 동안에는 잠이 쏟아진다
창밖에는 눈이 쏟아지는 것처럼

깨어나면 낯선 이가 옆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원산으로 가요
거기서 살아요

창문이 덜컹이는 방에 나란히 누워
한 사람이 천장을 가리키면
한 사람이 천장을 보는 것처럼

깨어나면 또 다른 이가 옆에 앉아 창에 기대어 졸고 있다

플랫폼에는 이불을 닮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어
저기 저 열차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같지

이불은 차고
베개는 낮고

어느새 나타난 역무원이 호각을 불어
새들이 멀리 흩어지는 것처럼

나는 원산행 열차에 올라
잠이 들었다.



<작가의 탄생>
민음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