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때때로 쓰고 읽는,

장마가 끝난 하늘은 너무 맑아서
너무 멀리 온 것이 드러난 구름
감추어 둔 말을 들켜버린 저 한 줌의 옅은 구름

​전하지 못한 말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너무 멀리 흘러와 버렸구나
괄호 속에 혼잣말을 심고
꽃피지 못하는 말들에게
가시같은 안대를 씌워야 했구나.
차라리 폭풍의 지난밤이 견딜 만했겠다
천둥 소리로 가슴을 찢고 자진할 만했겠다

​하지만 장마 갠 하늘에
흩어지지 못한 구름 한 점이여
숨을 데 없는 하늘에 들켜버린 마음이여
너무 넓은 고요를 흘러가다가 뒤를 돌아볼까봐
구름에게 나는 몇 마디 중얼거려본다

​마지막 사흘을 퍼붓던 비가 그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토록 푸른 하늘이라면
이제는 페이지의 접혀 있던 귀를 펴야 할 때
밑줄을 긋지는 않았지만 그 문장들 아래
없는 밑줄도 이제는 지워야 할 때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문학동네, 2018